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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 쯤, 일요일 밤이었나...버지니아에 있는 구세군(Salavation Army) 아카이브에 내가 필요한 중요한 자료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날 새벽에 무작정 버지니아로 차를 몰고 내려간 적이 있었다. 4시간 이상 운전길인데, 너무 들뜬 마음에 아무 생각없이 달려갔다. 거의 다 와서 생각하니, '아차 예약을 안 했구나' 하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면서 불안해졌다. 아니다 다를까, 도착 후 예약자에게만 개방한다는 아카이브 사서의 말을 듣고, 발걸음을 돌이킬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허탈하던지...

그러다가 떠오른 것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워싱턴 국회 도서관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거기서 예상치 않았던 자료들을 발견하는 행운을 누렸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이, 세계 제 2차대전이나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에게 보내어지던 기독교 관련 신문이나 잡지, 그외 종교 물품들인데, 미국 Salvation Army에서 발행해서 군인들에게 보내어졌다는 War Cry라는 잡지를 그곳 사서의 도움으로 하루 종일 볼 수 있었다. 기쁜 마음에, 약 5시간에 걸쳐, 필요한 부분을 찾아 복사하고 사진을 찍어댔다. 물론 하루 가지고는 택도 없는 분량이었다. 다음에 다시 찾아갈 계획이다. (War Cry 가 미군들에게 보내어졌다는 것은, 미국 종교사의visual and print culture 부분에 탁월한 학자인 David Morgan 과의 개인적 컨택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이 매거진에 흥분한 이유가 몇가지가 있다. 내 관심 분야와 연결되는 소스가 너무 많은데, 첫째는, 이러한 종류의 매체가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종교생활을 지속했는지에 대한 소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 잡지가 특이하게도, 내 주된 관심 중의 하나인 예수 이미지들을 정말 많이 담고 있다. 셋째는, 매년 12월호가 크리스마스 특집호 형식으로 발간이 됨에 따라, 크리스마스 문화에 대한 소스들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서 석사 논문으로 미국의 크리스마스가 어떻게 형성 발전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한국적 상황에서 적용되었는지에 관해 썼었기 때문에, 참 반가운 자료였다.

아래 사진은 1966년 12월에 오하이오 클리브렌드 구세군에서 한국과 베트남으로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를 보내는 장면이다. 한국의 크리스마스 문화 정착에 있어서, "구세군"과 "선물 상자"는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키이다. 나중에 한번 써 보겠지만, 구세군은 선물을 주는 (gift-giving) 크리스마스의 의례 행위를 그것의 자본주의적 형태, 즉 자선 (charity)문화로 바꾸면서, 나아가 사람들에게 일종의 사회적 스펙타클 (public spectacle)을 제공했던 단체였다. 그들과 다른 많은 기독교 단체들이 한국에 보냈던 선물 상자는, 한국 전쟁 후 한국인들에게 미국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면서, 미국과 기독교의 인류애적 자선행위를 자랑하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이것은, 한국에서 미국적 크리스마스 문화의 연장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선물상자를 받았다는 기록은 몇 있는데, 실제로 이곳에서 보낸 것에 관련된 사진을 발견해서 기뻤다. 역사를 공부하는 재미가 여기 있다. 좀더 초기 자료가 없는지 다음 기회에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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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hnson



1952년 겨울, 빌리 그래함 (Billy Graham) 은 전쟁 중이던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 있던 미국 부대들을 방문하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을 비롯한 정치인들 뿐아니라, 각종 집회를 통해 한경직 목사와 같은 개신교 지도자들과 교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가 한국에서 그가 보고 느꼈던 것들을 써서 출간했다. 이름하여, "I Saw Your Sons at War: The Korean Diary of Billy Graham"

지난 학기, 초기 냉전시기의 미국 개신교 복음주의자들이 전쟁을 지지하고 군 병력 증가와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 어떻게 예수에 관한 이미지와 아이디어들을 만들어 사용했는지에 관한 페이퍼를 썼었다. 이것을 위해 자료를 수집하다가, 빌리 그래함의 이 "다이어리"를 발견하고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 64쪽의 길지 않은 "다이어리" 안에는 당시의 한국 상황에 대한 단순한 묘사 뿐만 아니라, 빌리 그래함이 한국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에 관한 중요한 소스들을 포함하고 있다.

공산주의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을 가지고 있던 빌리 그래함은, 항상 한국 전쟁에서의 한미연합군의 승리를 위해 설교하고 기도하였고, 언제나 전면적인 총공격을 선호하였으며, 전쟁에 있어 주저하거나 질질 끄는 식의 미국 정부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 "다이어리"에서도 빌리 그래함의 그런 생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한국 전쟁을 종교적으로 이해했다. 당시 미국의 많은 보수적 개신교인들이 그랬듯이, 그는 한국 전쟁을 "영적 전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 "다이어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고난을 겪는 것을 배우고 있는 한국의 연합군에게" 헌정했다. 심지어 그는 다른 책에서 예수를 "영적인 맥아더 (Spiritual MacArthur)"라고 표현하기고 했다.

한국 전쟁에 관한 많은 역사가들의 연구들이 있지만, 당시 미국의 개신교인들이 이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참여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미국의 전쟁 참여와 한국의 정치 상황에 영향을 끼쳤는지에 관한 연구는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 전쟁과 그 전,후의 기간이, 미국에서 빌리그래함을 비롯한 소위 신복음주의자들이 급성장한 시기와 맞물리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을 연구하는 것은 한국 전쟁 연구에 있어서, 그리고 전쟁 후 한국 개신교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초기 미국 선교사들에 대한 나의 관심이, 요즘들어 한국 전쟁당시의 미국 개신교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이유이다. 뭐 이 시기를 연구하는 것이, 아직도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국 사회와 학계에서 그리 "안전"한 행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많은 이들이 꺼려한다는 얘기도 듣지만, 그러기에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어줍잖은 의무감도 살짝 들고...무엇보다 재미있는 구석이 많고...




스캔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이 책에 담겨진 사진들 중에 빌리그래함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사진 한장 (위)과

빌리그래함이 영락교회에서 집회 할 때 한경직 목사가 통역하는 모습의 사진 한장 (옆)을 덧붙힌다.

(초기 선교사들의 사진들을 보면서 느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사진들 속에서도 한국인은 미국인의 주변부에 있거나 의존적인 존재로 표현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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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hnson

뉴욕 유니온 신학교 에서 American Liberal Theology 라는 제목의 수업을 듣고 있다. 교수님은 라인홀드 니버 교수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게리 도리엔 Gary Dorrien 박사 . 놀랄만큼 방대한 지식과 분석력을 가진 역사 신학자이자 윤리학자이다. 오랫동안 Theology 공부를 안 했더니, 요즘은 신학관련 글을 읽는 것이 힘들다. 거의 매주 페이퍼 하나씩을 써 가야 하는데, 왜 이리 어려운지...

페이퍼 중 하나를 한국어로 번역해 보았다.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써 놓고 나니, 뭐 내용이야 기말페이퍼도 아닌 독후감 수준의 response paper이니 깊이가 없다손 치더라도... 내 한국어 실력이 문제인지 번역이 어려운 건지...참 심란하다.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어 표현 능력은 자꾸 떨어지고..ㅠㅠ 특히 마지막 라우센부쉬의 문장은 번역하면 느낌이 사라질 것 같아 그냥 두었다. 라우센부쉬와 사회복음....아직 연구가 많이 더 필요한 부분이지만, 일단 다음으로 미루어놓고 (또!) 일단 여기서 넘어가자. (구글에서 다운받은 라우센부쉬의 책 두권을 첨부한다.)

월터 라우센부쉬, 세계화, 그리고 하나님 나라 


"라우센부쉬 이후에, 어떤 복음도 사회복음이 아닌 것이 없다." 듀크의 저명한 기독교 윤리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말이다.[각주:1] 실제로, 월터 라우센부쉬 이래로 사회 복음 (Social Gospel)의 유산은 기독교 신학과 윤리 뿐 아니라, 주요한 기독교 사회 운동에 깊은 영향을 끼쳐왔다. 하지만, 기독교가 아직도 라우센부쉬가 직면했었던 것과 다르지 않은 사회문제들을 직면하고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차별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아직도 가난으로 인해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이 이 땅에 넘쳐난다. 그리고 그가 아이들의 장례식에서 아픈 마음으로 "도대체 왜 아이들이 죽어야만 하는가?"하며 울부짖던 그의 애가는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것이 왜 우리가 사회복음의 유산을 이 21세기의 사회속에서 다시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사회복음이 아직도 오늘날의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적실성있는 대안이 되어질 수 있을까? 100여 년전 미국 개신교의 문화적 가정 (supposition)에 의해 만들어지고 움직여지던 사회 복음 운동이, 과연 오늘날의 교회가 세계화와 관련된 많은 이슈들과 긴장들을 다루는데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라우센부쉬의 사회복음 신학은 오늘날 미국의 국제정치에 있어서의 다양한 이슈들에 적절한 대답들을 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가지고, 먼저 "죄"에 대한 라우센부쉬의 신학적 견해부터 살펴보자. 그는 죄를 일종의 "사회적 힘 (social force)," 또는 "자기 (self)와 사회간의 갈등"으로 이해했다. 다른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달리, 그는 원죄에 대한 그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악의 초자연적 힘과 원죄의 사회적 실체"를 인식하고 있었다. 라우센부쉬에 따르면, 죄는 사회적 전통의 라인을 따라 전달되어지는 것 (transmiited)"이다. 다시 말해서, "어른들의 지속적인 악덕과 범죄는 유전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화(socialized) 되어짐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죄는 본질적으로 "이기심 (selfishness)"이다. 이러한 정의는 사회복음을 다른 개인주의적 성향의 다른 종교와 구별시켜준다. "죄된 마음은 비사회적 혹은 반사회적인 마음이다."  따라서 죄의 실체와 본질은 국가의 재산을 일정 계층의 사유재산으로 만들거나, 노동자들들이 불이익을 당하게끔 내버려두는 사회 단체들 속에서 발견되어진다  [각주:2] .


라우센부쉬는 악한 사회구조가 좋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쁜 것을 하게끔 만든다고 생각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죄의 정점을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속에서 발견한다. 고용주와 자본가에게 절대적 파워를 제공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평등은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 흥미롭게도, 라우센부쉬는 자본주의가  칼빈주의에서 비롯된 "종교적 검약 정신 (religious frugality)" 에 기초해 있다고 관찰한다. 막스 베버 (Max Weber)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나아가, 라우센부쉬는 자본주의가 그것의 토대를 갉아먹고 있다고 말한 다니엘 벨 (Daniel Bell)의 1976년 책 The cultural contradictions of capitalism 을 예상이라도 한 듯, 1915년에 쓴 그의 책 Christianizing the Social Order 에서, 자본주의의 상품화하는 정신이 사람들의 이기심을 조장하면서 칼빈주의의 후예들의 덕목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각주:3] 

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통렬한 비판들 중에서, 자본주의가 "미국인들의 이기적 본능을 지나치게 개발시킨다" 고 한탄한 점에서 깊은 인상을 받는다.[각주:4] 라우센부쉬는, 미국인들이 오직 전쟁할 때만 공동의 목적이라는 기치를 내세운다고 비판했다. 만일 죄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것이라면, 그리고 이기심이 사회문제들을 발생시키는데 있어서 하나의 힘으로 기능하는 것이라면, 당시 미국인들의 자기 중심적 혹은 자국 중심적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죄악의 원천인 것이었다.

사실, 사회복음 운동을 연구하면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당시 대부분의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사회복음 운동가들이 전쟁을 반대하던 그들의 입장을 윌슨의 전쟁 개입 결정 직후 급선회했다는 점이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우드로우 윌슨 (Woodrow Wilson)이 세계 민주주의를 수호할 미국의 책임을 내세우며 미국인들의 도덕적 열정에 호소함에 따라, 대부분의 사회복음 리더들 - William Adams Brown, Henry Churchill King, Sailer Mathews, Lyman Abbott, ect- 이 윌슨의 정치적 이상주의를 "사회복음 이상주의 (social gospel idealism)"의 한 예로서 받아들이며 적극 찬성하였다.[각주:5]

라우센부쉬가 볼 때, 그와 같은 생각들은 너무나 미국 중심적이어서, 그들로 하여금 국내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발생시키는 탐욕과 똑같은 종류의 탐욕이 전쟁을 불러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여, 라우센부쉬는 말한다, "사회 문제와 전쟁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하나의 문제이다. 사회복음은 이 두가지를 모두 직면하고 있다."[각주:6] 

라우센부쉬는 국제적인 이슈들을 다룰 수 있는 보다 큰 의미에서의 사회 복음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점이 오늘날 소위 세계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이다. 미국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국의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불평등과 부정의가 한국의 노동자들이 자국에서 경험하는 그것들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시장이 미국으로부터 전세계로 확장됨에 따라, 사회문제는 점점 더 복잡해졌다. 한 국가 안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들을 그저 국내 문제로만 생각하고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기독 교회는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한 적실성 있는 신학적, 윤리적 대답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예를 들어,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내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현 국제무역을 자국 중심적으로 이끌어 나갈 경우, 그것은 필연적으로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노동자들의 권리와 상충되어질 것이다. 이럴 경우 사회복음의 유산을 이어받은 미국의 기독교 리더들은 어떤 제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라우센부시와 많은 사회복음 운동가들은 기독교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강력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들이 볼 때, 당시의 자유방임 (laissez-faire) 경제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시장구조서의 힘의 불균형을 무시함으로, 노동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영속적으로 위협하고 있었다. 따라서, 경제적 파워를 민주화 (democratization) 하기 위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사회복음 리더들은 정부가 경제를 규제함으로써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는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우센부쉬에게 있어서, "경제적 민주주의(economic democracy) 없는 정치적 민주주의 (political democracy)는 현금화되지 않는 약속어음 (uncashed promissory note)이고 내용 없는 형식"에 불과했다.[각주:7] 근대 미국의 노동자들은 정치 영역에서 하나의 권리를 가진 시민권자들이었지만, 경제적 영역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경제적 힘을 가진자들이 필연적으로 정치적 힘을 소유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경제적 민주주의가 담보되지 못한 정치적 민주주의는 실체가 없는 허울일 뿐인 것이다.

물론, 그가 말하는 경제적 민주주의는 재산권 자체를 없애자는 의미는 아니다. 정치적, 경제적 민주주의 하에서 재산권의 확장을 말하는 것이었고, 이 부분에서의 정부 개입을 요구한 것이었다. 그는 중앙집권적 집산주의 (centralized collectivism)을 반대했고,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시장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런 점에서는 그의 기독교 사회주의는 막시즘과 다르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시장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시장 안에서의 민주적 구조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막스의 비전과 자본주의 사이에서 라우센부시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은 아닌가? 이런 문제에 대해서, 그는 존 스투어트 밀 (John Stuart Mill) 의 분권화된 형태의 사회주의 비전에서 해답을 찾는 듯하다. 라우센부시는 그의 책 Christianizing the Social Order에서, 밀이 주장한 "노동자들이...집단적으로 자본을 소유하고 자신들이 선출하고 제거할 수 있는 경영자들 하에서 일하는" 비전을 수용한다. [각주:8]시장을 인정하지만, 분권화된 혹은 다원화된 경제적 사회주의가 힘의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라우센부시가 자본주의 시스템이 가진 힘의 불균형 문제를 그토록 비판한 것은, 힘을 민주화 하는 것 (democratization of power)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기 때문이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결코 힘을 독점하지 않는다. 하나님도 힘을 나누어주신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 개념을 민주화하려고 애썼다.

라우센부시와 당시 사회복음 운동가들의 비전은 실제로 미국 정치와 경제에 어느 정도 적용되었으며, 특히 뉴딜 정책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실현되었다. 흥미롭게도, 지난 해 말부터 시작된 경제 공황과 그로 인해 계속하여 제기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경제문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라는 이슈들이 라우센부시 시절의 상황과 흡사한 상황이 됨에 따라, 오늘날 다시 사회 복음 운동가들의 목소리가 재조명받을 수 있는 장이 열린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 독점하고 있는 힘을 민주화하고자 하는 사회 복음의 이상은 오늘날 국제 정치의 다이나믹 속에, 특히 국제 무역의 영역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국제적 이슈들도 다룰 수 있는 사회복음을 주장했던 라우센부시의 비전이었다. 이런 점에서, 국가간의 힘의 불균형을 무시하면서 자유 무역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사회 복음의 비전에 의해 도전되어져야 한다. 물론, 당시 사회 복음 운동의 하락에서 보듯이, 그러한 도전들이 하나의 완벽한 경제 구조나 완벽한 사회 질서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라우센부시가 말했듯이, "At best there is always an approximation to a perfect social order. The Kingdom of God is always but coming. But every approximation to it is worth while."[각주:9]



 

  1. Stanly Hauerwas, in Christianity and the Social Gospel in the 21th century, ed. Paul Rauschenbusch (New York: HaperOne, 2007), 176. [본문으로]
  2. Walter Rauschenbusch, A Theology of the Social Gospel (New York: Macmillan, 1917), 45-68. [본문으로]
  3. Christianzing the Social Order (New York: Macmillan Company, 1915), 212. 라우센부시와 다니엘 벨을 연결지은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게리 도리엔의 분석이다. Gary Dorrien, The Making of American Liberal Theology: Idealism, Realism, & Modernity 1900-1950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3), 113. [본문으로]
  4. Ibid., 369. [본문으로]
  5. Dorrien, 120. [본문으로]
  6. A Theology of the Social Gospel, 4. [본문으로]
  7. Christianizing the Social Order, 353. [본문으로]
  8. Ibid., 357. [본문으로]
  9. Christianity and the Socical Crisis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07), 42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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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만나다2009/02/20 16:10



사찰의 입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한국에서 보던 전통적(?) 절이 아닌, 미국 외곽에 있는 한인 기도원 같은 모습의 건물이 보였다. 나중에 스님께 들어보니, 이곳에서 전통적인 사찰 건물을 짓는데는 엄청난 돈이 든다고 한다. 해서, 미국에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약 6-7개 정도의 전통적 한인 사찰이 있다고 한다. 뉴욕 플러싱 쪽에 있는 한마음 선원 (Hanmaum Zen Center이 잘 지었다는 말을 듣고, 다음 주 쯤 가봐야 생각하곤 석달이 지나버렸다.^^;;



하지만, 절 안으로 들어가니 어느 정도 예상했던대로의 법당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altar 위에 놓여 있는 세 개의 큰 금불상과 그 뒤에 수많은 작은 불상들이었다. 가운데 있는 것은 석가모니 (
Shakyamuni), 양쪽에 있는 것은 Amitabha or Amida와 Medicine Buddha다. (불교에 관해 영어로 먼저 공부하면서 한국말로는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른다. 이 무슨 부끄러운 시츄에이션인지...)




피아노와 스피커가 있다는 사실이 왠지 어색해 보였던 것은, 아마도 내 머리 속에 '절에 있어야 할 물품 목록'에 없는 것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일요일 법회 때 피아노와 마이크를 사용해서 찬불가를 부른단다. 불교계에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모르겠지만, 기독교 찬송가를 불교식으로 수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로, 하바드의 비교종교학 교수이자, 
The Pluralism Project의 디렉터인 Diana L. Eck 은 그녀의 책 A New Religious America 에서, South Central Los Angeles에 있는 일본계 미국인들의 사찰인 Shenshin Temple을 방문하고, "a direct adaptation of Protestant hymnody"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예불 형태와 건물의 구조가 얼마나 많이 서구 기독교의 그것들을 수용함으로 형성되었는지를 관찰하여 기록한다.[각주:1]

늘 서구 기독교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보다가, 반대로 동양 불교가 미국에서 어떤 식으로 미국화(Americanization) 되는지를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두 종교가 만나는 (encounter) 지점에서, 결코 한쪽의 변화만 발생할 수는 없다. 동양의 불교는 미국 안에서 미국화 되어가지만, 동시에 미국인들의 종교 이해와 실천에 있어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불교는 부처가 미국인들이 이해하는 전능자로서의 "신 (God)"이 아니라는 사실을 통해, 종교는 하나님과 관계된 어떤 것이라는 미국인들의 기본적인 종교이해를 문제 삼는다.

이 부분에서 이어지는 생각은, 미국내 한인 이민자들의 기독교회는 미국 내 종교 지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한 연구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번쯤 살펴볼만한 주제이다.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를 받아들인 한국인들이 서구 기독교를 한국의 상황에 맞게 토착화하고, 그것을 가지고 다시 미국으로 와서 미국의 상황에 맞게 또 한번의 변화를 겪었기에, 이들의 종교생활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풍부한 역사적, 종교학적 함축성을 지닌다.

예불 참석과 스님과의 대화 이야기는 또 다음에...

  1. Diana L. Eck, A New Religious America: How a “Christian Country” Has Become the World’s Most Religiously Diverse Nation (New York: HarperCollins, 2001), 14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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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hnson
길을 걷다 만나다2009/02/10 02:04

지난 학기 Changing Religious Landscape of the U.S 라는 수업에서 종교기관을 탐방하는 과제가 있었다. 자신이 자라온 종교전통과 완전히 다른 곳을 방문하고, 수업 시간에 그 탐방기를 나누는 형식이었다. 난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이곳의 한인 이민자들의 불교 현황을 알아볼 겸, 한인 불교 사찰을 방문하기로 했다.

인터넷 서핑 후 내가 방문한 곳은, 뉴욕 Salisbury Mills 라는 곳에 위치한 "원각사" 라고 하는 사찰이었다. 뉴저지 내가 사는 동네에서 약 1시간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면 우드버리라고 하는 대형 아울렛 매장이 나오는데 (명품 옷을 싸게 사려는 한인들이 꼭 들르는 관광 코스이다), 여기서 한 20분 정도 더 산길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있는 원각사를 발견하게 된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도, 수학 여행 때 빼고는 직접 사찰을 방문해 본 일이 없는, 더구나 불교를 적대시 하는 분위기가 강한 보수적 기독교 전통에서 자란 내게 있어, 이번 방문은 그저 머리로만 알고 있는 불교를 직접적으로 접하게 되는 거의 첫번째 경험이었다. 그래서인지, 사찰 앞에서 약간 흥분해 있는 (even, nervous)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찰 입구에 표지판은 내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두 가지 영어 단어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 중 하나는 "Soen"이었고, 다른 하나는 "Meditation Center"이었다. 우선, 미국에서 선불교는 일본 불교의 영향때문에 거의 다 Ze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선"이라는 단어를 고집하는 것이 흥미로워서, 스님 한분에게 여쭈어 보았다. 대답인 즉슨, "같은 선불교이지만, 일본의 선불교와 한국의 선불교는 똑같지 않다. Zen이 아닌 Soen을 씀으로써, 한국 불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는 것이었다.

한국에서야 그냥 "선불교" 하면 그만이지만, 일단 한국을 벗어나면 그것을 영어로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 라는 문제부터 단순하지 않게 된다. 종교적 정체성과 민족적 정체성이 복합적으로 얽히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민교회에서만 하는 줄 알았던, 한국 학교라든지 여름학교 (Summer Camp)라든지 하는 2세 학생들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들을 이 사찰에서도 제공하는데, 그 스님에 따르면, 이런 프로그램들이 한국 문화와 불교를 동시에 전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역시 religion and ethnicity를 통합하려는 시도이다. 


입구 표지판에 쓰여진 "Meditation Center" 라는 단어 역시 미국 불교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코드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한국인 뿐 아니라, 명상을 하기 위해 들어오는 미국인들도 꽤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이 사찰에 등록된 member (교회에서 "등록교인"이라고 부르는)들은 아니다. 정기적인 법회에 참여하여 예불을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불교적 명상은 지속적으로 하는 현대 미국 불교인들의 종교 문화는, "종교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 종교적 정체성을 규정하는가" 라고 하는 종교 정의 문제에 있어 기존의 서구적 개념을 흔들어 놓는다.

본래 이들에게 있어서 종교에 관한 전통적인 이해는 어떤 특정한 기관이나 조직에 소속되어 지속적인 의례에 참여하는 것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런 이해는,
Thomas A. Tweed 가 지적했듯이, "어떤 불교 사찰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불교적 관점으로 세상을 이해하거나, 불교적 의식 (Buddhist practices)를 수행하거나, (적어도) 자신을 불자로 이해하는 사람들을 설명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각주:1] 내가 방문했던 원각사나 미국의 많은 불교 기관들이 어떤 기관이나 조직의 냄새가 나는 "사찰 (Temple)"이라는 단어보다 "명상센터 (Meditation Center)"를 선호하게 된 데에는, 미국인들의 개인주의 성향과 일본 선불교의 영향, 그리고 그것들에 의해 바뀌어져가고 있는 현대 미국인들의 종교에 관한 이해 등이 작용한 것이다. 

이런...입구에 멈춰서서 얘기가 너무 길었다. 사찰 안에서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1. Thomas A. Tweed, “Night-Stand Buddhists and Other Creatures: Sympathizers, Adherents, and the Study of Religion," in American Buddhism: Methods and Findings in Recent Scholarship, ed. Duncan Ryuken Williams and Christopher S. Queen (Richmond, Surrey: Curzon, 1999), 7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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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ihnson